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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루터의 대교리 문답 #0 - 해설글 및 김기석 목사 와 최주훈 목사의 대화

대교리 문답은 4세기 전의 책이고 교리문답이라고 하면 한국에서는 웬스터민스터의 소요리문답이나 신앙고백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 책이 지금에서야 번역이 되었고 알리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지 "해설의 글" 이라는 목차에서 잘 드러난다. 거기에 김기석 목사와 최주훈 목사(이책의 번역자)의 대화에서도 루터가 어떤 목적으로 썼는지 배울점이 무엇인지 잘 알려주어 이를 정리해서 쓰고자 한다.

 

#해설의 글

 대교리문답은 당시 개혁교회가 생겨나고 자리잡아 가는 시점에서 나온 책입니다. 복음과 자유, 해방, 평등을 핵심가치로 시작했던 개혁교회지만 교리의 오용과 오해로 인해 성직자의 방종과 무식함을 낳게됩니다. 참다 못한 영주가 루터에게 이런 목사들의 방종을 놓고 편지를 썼고 루터는 시찰단을 세워 상황을 알게되자 이들과 교인들을 교육하기 위해 만든 책이 바로 대교리 문답입니다. 이 책은 두개의 서판이 들어간 이유는 처음엔 교인들위해 했던 설교를 모아 책을 냈지만 1년동안 공동체가 바뀌는 것이 없자 공동체의 원인이 목회자에게 있음을 알고 두번째 판에는 목사들을 교육하고자 내용을 추가합니다.

 이 책의 순서를 보면 십계명 다음에 신조를 배열한 이유는 율법과 복음의 변증적 관계를 위함입니다. 하지만 루터의 교리는 완벽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당시 상황을 생각하며 읽어야 하며 루터가 혼란했던 시절에 던지 질문과 그 질문에 답하기위한 정신이 무엇인지 고려하며 읽어야 할 것입니다.

 

#김기석목사와 최주훈 목사의 대화

- 교리란 무엇인가?

  대부분 '교리' 라는 말을 들으면 딱딱하고 정제된 단어로 율법같이 우리 삶을 제한할 것 같은 듣기만 해도 겁나는 단어일 수 있습니다. 독일어에서 '교리' 라는 단어는 'Katechismus' 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소리로 울림을 얻어 그 공명으로 살아간다." 라는 의미로 우리가 전혀 겁먹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많이 읽을 수 있지만 그것을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경 전체를 정리해 놓은 교리들이 도움이 많이 될 것입니다. 

 

-  목회란?

  소명의 자리인 세상과 동시에 교회에서 마땅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너무 그 역할에 치중하면 자신이 '참을 향한 순례자' 라는 사실을 잊게됩니다. 목사는 사유하게 하는 이로서 다른 이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야 하는데 자신의 생각이 바르지 않으면 잘못된 길로 이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서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하며 따라서 공부하지 않으면 그럴수 없습니다. 따라서 질문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성경에서 맞딱뜨린 경험을 가지고 세상을 마주봐야 합니다.

 

- 혼돈의 시대,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루터가 태어났던 시기는 르네상스가 시작하는 시기였고 오스만 투르크가 생겨났기도 한 시점이였습니다. 현재 우리도 문명사적 전환의 시기에 있음을 코로나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루터는 기존의 권위에 도전했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냈습니다. 루터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했고 이를 찾으려고 노력했으며 그 노력은 본질을 되찾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울타리 안에 있으려고 하는지 물어야 합니다. 헬무드 틸리케가 신앙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신앙과 교회를 지키기 위해 안전한 울타리를 만들지만 신앙은 그것을 뚫고 나가는 힘이 있습니다."

  "세계는 나의 교구다." 존 웨슬러는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 현장은 내가 지금 요구 받는 현장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복음이 머물러야 하는 현장이 일상의 자리라는 것을 환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일상의 자리 가운데 하나님이 자리하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마르틴 루터의 책에서 신앙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우리를 하늘로 끌어올립니다. 하지만 신앙은 거시서 무멀지 않고 우리를 끌어내려서 이웃 안으로 들여보냅니다. 그들을 섬기는 것이 그리스도의 자유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는 방종이 아니고 내 이웃 안으로 들어가 거기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체험하는 것입니다."

 

- 신앙의 자유

  신앙의 자유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고민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실천하는 힘입니다. 앞으로 교회가 지켜야 하는 것은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일일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42-43절에도 보면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르실때 '반드시 나를 따라야 한다.' 라고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 내 기억, 내 생각

 하나님은 사랑을 강요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금방 등을 돌리고 달아나버릴때가 많다. 그런 우리를 바라만 보고계시는 이유도 이와 같지 않을까. "우리 하나님", "아버지" 라고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으시는 분. 어딜 가든 어디서든 내 앞길을 놓고 계시는 분. 그 사랑이 참됨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인으로서 산다는 것은 이렇게 끝없는 성찰과 고민 그리고 질문을 성서의 관점에서 던져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코로나 때문에 교회를 못나가는데 안가도 되는 걸까요?" 라는 질문을 본적이 있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신앙의 근본적인 것들을 다시 묻게되고 우리가 보지 못했던 본질적인 것들을 보게 하는 것 같다. 심지어 내 본질, 밑바닥도 없음을 깨닫게 되었고 다시 처음부터 채워나갈 수 있게되는 기회임을 알게됐다.

 다윗이 압살롬에게서 도망했던 시기에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회복한 것 처럼 내가 처한 모든 상황이 다시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찾기위한 시간이었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노래를 올려드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