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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동네를 거닐며 든 생각

집 뒷편엔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있다. 아침이 되면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오후가 되면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해가 질 때쯤이면 유치원 창문에 환한 불빛이 비친다. 그리고 유치원를 건너가면 작은 놀이터가 있다.

 

저녁이 되면 놀이터는 밝은 가로등이 많지 않다보니 꽤나 운치있는 장소가 된다.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이나 학원을 마친 학생들, 주민들에게 작은 쉼터가 된다. 오늘 동네를 걷다보니 한적하고 운치있는 놀이터에 머물게 되면서 한가지 기도가 생각났다.

 

[ 하나님, 당신은 우리 앞에 계시고, 내 옆에 계시며, 내 안에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옆에,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이고 우리 모두 안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서로 함부로 할 수 없음을, 충분히 사랑받을 존재임을 압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고 생명이 넘칩니다. 하지만 저희는 주님이 이미 아시겠지만 수없이 서로를 미워하고 싫어했습니다. 음해하기도 했고 옳지 못한 행동과 말을 일삼았습니다. 예수님을 비추는 투명한 존재임을 알았지만 나를 비추는 불투명한 존재였습니다. 저희는 무엇이 옳은 방향인지 모릅니다. 발람의 당나귀는 보았지만 발람은 보지못한것 처럼 내가 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 모릅니다. 당신의 손에 맡깁니다. 우리의 길을 당신께서 인도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이시여 제가 당신의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저의 주가 되어주소서. ]

 

민수기 23장에 나오는 발람은 일종의 주술사였다. 당시 모압 왕 발락은 수많은 이스라엘 민족을 보고 두려워했다. 그래서 발람을 불러들여 그들을 저주하려고 그를 부른다. 그리고 발람은 부름에 응답하여 길을 나섰지만 타고가는 길에 여호와의 사자를 만난다.

 

 

어렸을 때 들었던 얘기지만 지금도 생각난다. 아마 나귀가 말을 하고 자기 주인의 말에 따지기도 하니 꽤 인상이 깊었나 보다. 그리고 발람은 여호와께서 하신 말만 하기를 당부한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민족의 무리를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랴 ]

 

삶을 살면서 꽤나 고통스러운 일들이 너무나 많다. 속쓰릴 일이 너무나 많이 생기면 왜 내게 이런 시련이 있는걸까 하나님께 묻는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도 고난 후 열매를 얻으신 것 처럼 믿음에도 고통이 있으며 인내가 필요하다 말한다.

 

그리고 그 고난이 하나님보다 클까.

 

하나님은 내가 당한 고난보다 크시다.

 

요한계시록도 사람들이 당할 고난과 구원의 모습을 번갈아 가며 보여주는 이유도 어쩌면 그런 의미이지 않을까.

 

나는 지금도 내일일이 두렵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이, 그분의 존재 자체가 내게 큰 위로되심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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