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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설교 정리

갈르엣

본문 : 창 31:42-50

설교 : 김기석 목사

어떻게 시기심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그것은 사랑입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잘되면 미워할까요. 잘되면 기뻐합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저절로 되는 사랑입니다. 손자를 보면 바라만 보면 저절로 마음이 갑니다. 그런데 사랑은 저절로만 되지 않고 '하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죠. "너네가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도 그만큼 하지 않겠느냐."

인생이란 그런 사랑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온전한 사랑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사랑을 향하여 나아갈때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는 결실이 있어요. 그것은 타인과의 평화로운 공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화해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창세기는 온통 갈등속에 머물고 있지만 그 갈등을 어떻게 넘어서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야곱의 이야기는 갈등을 어떻게 평화로 바꾸는 다양한 샘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의 외삼촌이자 동시에 장인인 라반과의 갈등이야기, 친형인 에서와의 화해이야기가 있습니다. 야곱은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살던 사람입니다. 요셉의 초대를 받아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이 바로를 만납니다. 바로가 묻습니다. '노인장 인생을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야곱은 대답합니다. '이 세상은 100년 하고도 서른해가 되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떠돌아 다닌 햇수보다 많지 않지만 험악한 세월을 살았나이다.' 그 험악한 세월 속에 온갖 슬픔과 고통이 다 담겨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이삭을 속여 에서에게 갈 축복을 뺏어서 밧담 아람으로 가 살다가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입니다. 야곱은 외가에서 살았지만은 여전히 외부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야곱이 재산이 불어나자 아내들의 얼굴빛이 달라졌다고 성경이 그런 얘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돈이 들어가면 아름다운 공동체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제 유년시절 참 아름다운 땅이었지만 개발이 시작되면서 사람들 사이에 재산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향촌사회의 따뜻함은 사라졌고 서로 살벌하게 원수가 되어 사는 모습을 보면서 고향을 영원히 잃어버렸음을 꺠달았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사실 재물이라는 번역된 단어는 맘몬(mammon)이라는 단어인데 교환의 특성을 갖는 돈, 재물의 의미만 갖는게 아니라 인격까지 담고있습니다. 자기가 사람속에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기 전까지 만족하지 못하는 거에요. 그래서 우상입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것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맘몬에 사로잡힌 사람은 하나님 제대로 섬기지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돈이 부정적으로 개입되는 순간 아름다웠던 관계는 무너지게 되있습니다. 가족간의 관계에서도 돈때문에 원수가 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다. 그러니 가족 간에는 돈에 대해서 담백해져야 합니다. 

야곱은 더이상 거기서 지내지 못할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외삼촌이 출타한 중에 식구들과 재산을 다 모아서 탈출하든 나옵니다. 고향에서 도망쳐 나온것 처럼 타향에서 나올 때도 도망자 신세로 나오게 됩니다. 이것이 야곱의 험난한 세월의 내용입니다. 그가 사흘길을 걸어가고 있을때 라반은 친족들을 모아서 야곱의 뒤를 추격하게 됩니다. 일주일동안 추격해서 찾아왔습니다. 그러니까 그사이에 얼마나 많은 분노를 품고 있었겠습니까. 드디어 두 세력이 마주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라반과 야곱은 서로를 책망합니다. 자네가 나를 속였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딸들을 전쟁포로처럼 끌고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사랑하는 손자 손녀들에게 입맞춤을 할 기회도 없었다고 합니다. 라반이 하는 얘기가 당신의 속마음을 말하면 북과 소금을 가지고 축하해주면서 돌아 갈 수 있도록 해줄 수 있었을 꺼라 얘기합니다. 야곱은 자신의 허물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낮에는 더위에 시달렸고 밤에는 추위에 시달렸다고 말합니다. 그는 사실 머슴노릇을 한 셈입니다. 그런 수고를 함에도 불구하고 장인은 열번이나 품삯을 가로챘습니다. 기득권을 가지고 약자를 착취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정의를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셨기에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었다고 얘기합니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대화가 폭력을 막아내주고 있습니다. 폭력은 대화되지 못한 반응입니다.

이야기하기는 정치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는 중요한 행위입니다. 라반은 두가지를 부탁합니다. 자기 딸들을 박대하지 말아달라는 부탁과 서로 침해하지 말자고 협정을 맺자는 제안입니다. 야곱은 그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화해의 식탁을 차렸고 다음날 아침 라반은 손자 손녀들과 입맞추어 작별하고 자기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자칫하면 친족간에 전쟁이 벌어질 수 있음에도 폭력의 충동에도 대화를 이뤄냈고 마침내 화해를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살다보면 이해관계가 엇갈려 서로 반목하고 갈등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런 문제를 잘 직시하고 풀어내는 것이 신앙적 지혜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강자들은 화법을 가장하여 약자들을 훼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약자들의 곁에 머물면서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신다는 겁니다. 정의를 바로 잡아주신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제가 겪은 고난과 제가 한 수고를 몸소 살피시고 어젯밤에 장인어른을 꾸짖으셨습니다. 갈등하는 집단이 다시 갈라섰습니다. 성경의 그 다음 이야기를 보면 일단의 사람들과 마주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천사임을 알아봅니다. 그리고 그곳을 마하나임이라고 이름 짓습니다. 하나님은 정의를 세우는 동시에 갈등하던 두 사람들이 하나님을 이루고 평화를 이루는 곳에 현존하시는 분임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사는 곳이 마하나임이 되어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습니다. 애써 평화를 선택하고 화해를 모색할때 우리는 사랑이라는 궁극적인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갈르엣 기적이 우리의 삶속에서도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불화했던 사람들이 화해하고 화해를 넘어서서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리석어 보이지만 그 꿈 포기하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