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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설교 정리

내 삶의 방향을 다시 잡기 위한 설교(1)

"시편을 통해 배우는 인생" 첫번째 "인간이 무엇이기에' 

출처:https://youtu.be/EoOWV7CKgTk

 

본문 : 시편 8편

‘인생이란 뭐에요?’

이 질문에 대답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여기 많은 노인분들도 살면서 여러 어려움도 있었음에도 여기 앉아 계시지 않습니까.

 

여러분 성경 66권 가운데 인간의 가장 적나라한 감정들이 남김없이 표현되는 곳이 바로 시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셔’ 라고 느낄때 그 충만함속에서 터져나오는 찬양의 노래가 시편에서 중요한 요소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라는 게 늘 그렇게 행복하지않아 그 때문에 하나님의 부재속에서 터져나오는 원망의 마음들이 시편에서 탄식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욥기에서도 욥은 신실하게 믿었음에도 아이들이 죽고 재산도 사라지고 나중에는 자기에겐 악성종기도 생겨나고 그야말로 벼랑끝으로 내몰린 것처럼 어려움이 있던거죠.

신실하게 믿던 욥도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께 묻고싶은게 있습니다. 하나님, 제 죄가 무엇인지를 일러주세요. 제가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그러자 회오리바람속에서 하나님은 대답해주시지 않고

“욥아,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때 네가 어디 있었냐. 세상의 피조물을 만들때 네가 어디있었냐.”

유구무언이죠.

 

그때 비로소 욥이 깨달은 것은 세상이 이리저리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 생각이지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아요.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시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하나님의 응답이 오길 기다립니다.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안계셔. 내 고통에 침묵하시는 그분은, 아니 존재하신다고 해도 전능하지 않아.” 라고 말이죠.

그러나 예수님은 마지막에 이렇게 기도하셨죠.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께 맡기나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들을 다 이해할 수는 없어요.

이해할 수는 없어도 하나님의 일이 성취되기를 소망하는 것이죠.

그 큰 하나님의 사랑에 나를 맡길 수가 있는 것이 여러분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그런 깊은 믿음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기쁠때 웃고 슬플때 우는 것이겠죠.

에덴에서 쫓겨난 인간이 정착한 곳이 에덴의 동쪽 놋땅이라고 합니다. 놋은 방황이라는 뜻인데 우리네 인생이 방황하는 것이죠.

 

인간은 방황하면 각자 불안해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꾸 속으로 모아들임으로 불안을 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많은 것을 모으기 위해선 누군가를 밀어내야 하죠. 경쟁해야합니다.

따라서 사람은 불안할 수록 누군가를 사랑할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경쟁을 하는 사람이 잊어버리는 능력 한가지가 있는데 바로 

누군가를 소중하게 여기고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기쁨에 동참하는 능력’ 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처음으로 보시기 좋지 않았다는 것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홀로 있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았다. 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짝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하와를 당장 만들어주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흙으로 짐승을 만들어 아담앞에 끌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이 처음으로 하는 것이 짐승들에게 이름을 붙여줍니다.

이름을 붙여주는 것은 서로 관계가 생기는 것이죠.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나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다만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그러니 아담이 이름을 붙여준 것은 동물과 인간의 교류가 시작됩니다.

여기에 조너선색스는 하나님이 동물을 만들어 아담에게 이끌고 온 까닭은 함께 기뻐하자고 끌어 오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고 얘기하는데

인간이 가장 하나님을 닮았을때는 하나님의 기쁨에 동참할때입니다. 

손가라 열개가 얼마나 아름답겠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신비에 눈을 뜨니 손가락 열개도 신기하고 봄되면 피는 개나리가 부활의 시범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시편 8편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보며 경탄합니다.

여러분 세상의 모든것에 하나님의 숨결이 있음을 볼 줄 알게 될때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마음과 잇댄 삶이 될 가능성이 많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 왔을때 자녀교육 잘하고 싶었잖아요.

그런데 여러분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내 자녀를 가장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공부 잘하는 것, 재산 많이 물려주는것.

여러분 한국에서도 사회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이 누구냐면 많이 배운 사람들이 어지럽힙니다.

자녀에게 많은 것을 물려주면 자녀들은 방탕한 세월을 보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러러 보는 법을 배울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앞에 더 큰 권위가 있음을 꺠달아야합니다.

 

그래서 인생을 배워야 한다면서 시편을 끄집어 내는 이유가

하나님이 강조하신 세계를 한껏 향유할 수 있을때 인간은 아름다워진다고 제가 분명히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 시인은 그 놀라운 세계 앞에서 나의 있음 그 자체가 신비라는 것이기에

 4편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

라고 묻습니다.

 

이때 사람은 아담을 뜻하는데 흙으로 지어진 존재. 진토에 불과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애를 태우신다는 말이에요.

인간이 고통 받는 것을 바라보면 같이 고통받으신다는 거에요.

시인은 그것을 깨닫고 말하는 것이에요.

 

여러분 하나님은 저 멀리서 자족적으로 계셔서 즐거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옆에서 한분한분의 아픔때문에 아파하고 계신다는 거에요.

그래서 시편 130편의 시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가엾게 여기듯이, 주님께서는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가엾게 여기신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창조되었음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며, 우리가 한갓 티끌임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은 후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기뻐하셨던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은 병든 사람보면 불쌍히 여기셨어요. 긍휼히 여기셨어요. 애간장이 녹아내리는 듯 느끼셨어요.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은혜는 세상의 모든 아픔과 무관하지않아요.

 

여러분 모두도 받아들여진 이유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분의 가없는 은혜로 받아들여졌는데

그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해야하는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아픔을 받아들여 여기 고통받는 하나님의 자녀를 돌볼때 가장 영광받으세요.

 

기독교 핵심에서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이라고 하는데

이는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이웃사랑을 거치지 않고서는 하나님 사랑할 수 없어요.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을때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는 거에요.

 

그러니까 면류관 받는 것은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는 일에 내가 초대받는것.

경제적으로 넉넉해지고 건강하고 하는 것이 예수 믿음의 보람이요? 아니요 그것은 결과적으로 따라오는 것이고

예수 믿음의 가장큰 보람은 예수의 꿈을 꾸는데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경쟁의 사다리에 오르느라고 사람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이들에게 둥글게 손을 잡고 원만하게 사는데 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경탄의 능력이 있어야합니다.

내 속에 기쁨이 없으면 다른이들을 기쁘게 할 수 없어요.

시편에서 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경탄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내면에 차오르는 기쁨과 감사가 초대받은 자로서의 기쁨이 여러분의 삶을 힘차게 살도록 축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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