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상정리
권위란 무엇일까.
상급자 하급자가 있다면 상급자의 능력, 태도등을 보면서 하급자가 마음에서 존경이 우러날때 상급자가 권위를 내세우지 않지만 권위가 있다. 권위라는 말은 헬라어로 'exousia' 라고 하는데 이는 '본질에서 나오다' 라는 의미이다. 내가 근본이 바로 되있으면 사람들이 권위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는 말씀에 권위가 있었다고 말한 것처럼 예수님이 권위를 부린 것이 아니라 본질에서 나오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권위주의는 상급자에게 배울만한 것이 없는 데도 자기에게 복종할 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신앙이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어야 한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처럼 내가 신앙안에 있다고 할 때 나는 훨씬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앎으로 더욱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고 그 마음에 잇대어 살아가야하지만 그 길에는 여전히 정답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확한 답을 얻고 싶어하고 그런 답을 주는 사람의 말에 의존하고 싶지만 그렇지만 그것이 정답은 아니다. 그저 스스로 성숙해져야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내안에 있고, 내가 아버지 안에..'(요14:11) 이것이 신앙의 목표이며 이 마음을 가질때 상대의 권위적인 말을 분별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내가 신앙적 주체가 되어야 하며 누군가가 복종을 강요할때 그것은 틀림없이 잘못된 사람이다.
2. 이에 대한 나의 생각
교회를 다니다 보면 목사들이 과도하게 권위를 행할때가 종종 있다.
나의 명성교회 대학부 시절에는 이러했다. 연애금지 뿐 아니라 과거에는 목사가 연인을 갈라놓는등 가장 기본적인 욕구부터 간섭을 하곤했었다. 교회가 오직 인간에게 주어진 구원의 길이라고 설파하니 당연히 청년들은 교회에서 많은 봉사를 감당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인사권이 주어진 목사들에게 사람들을 주무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명성교회는 매년 안수집사와 장로등의 관직에 필요한 사람들을 임명한다. 단순 청년부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다. 목사들은 교회 대학부에서 봉사할 청년들을 임명하는데 당시에는 임명한 사람만 200명 가량 됐었다. 그러니 거기 안에서 서로 사랑이 꽃피지 않을수 있을까. 그러나 그것을 목사들은 곱게 보지 않았고 목사들이 곱게 보지 않으니 밑에 성도들도 곱게 보지 않았다. 그러니 뒷말이 나오기도 하고 그들을 흉보는 말도 들었다. 세월이 지난 지금 그당시 연인이던 몇분은 결혼까지 하셨는데 결혼을 하나님이 맺어주신 인연이라는 전제에서 보자면 그당시 흉을 봤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앞에서 죄를 지은것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교회 출석에 대한 엄청난 집착, 그리고 매주 출석한 성도수를 집계하고 그 숫자가 떨어지면 교회가 망할것 처럼 생각하고 남아있는 성도들에게 나오지 못한 사람들과 연락 또는 기도하게 해서 출석하게끔 하는 풍조가 있었다. 이를 모두 훈련이라고 포장해서 얘기하곤 했었다.
나는 목사들이 사람들을 길들이려고 하는 마음이 말씀보다 더 앞서갔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교회에서 지침에 따랐을 뿐이라고 한다면 그 목사마저도 어용목사일 뿐이다.
나는 다른 교회도 종종간다.
영상의 목사님 말씀대로 오직 명성교회가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고 다른 교회도 다니니 오히려 마음이 더 편해졌다. 신앙이 자유로워졌다. 명성교회가 자꾸 원로목사를 올려서 설교하게 하고, 심지어 그 설교가 정치적인 발언이 자꾸 나와서 내 마음을 어지럽히면 다른교회 가면 된다. 내가 이 교회에서 봉사도 안하고 있으니 책임 질 것도 없다. 만일 명성교회에서 나가라고 하면 나가면 된다. (사실 명성교회는 지금도 자기와 입맛이 다른 사람들은 여지없이 쳐냈고 배척하고 있으니 당연한 수순이다.)
잘못된 권위주의가 성도들에게 상처를 주는것 같다.
명성교회는 여지없이 자기아들에게 담임목사자리를 내주었다. 이를 비판도 하고 성명도 했던 많은 사람들, 내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교회 원로목사는 자기를 비판하는 사람은 사탄의 이야기라고 단칼에 선을 그었다. 그리고 비판하던 사람들 전부 교회에서 나가게 되었다. 교회에서 활동을 금지당하고 봉사도 금지당했다. 당시 유년부 총무였던 형님도 그만둘수밖에 없었다. 가장 교회에서 헌신적인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나갔다. 나갔지만 다시 돌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른 교회에서 잘 정착한 사람도 드물다.
어쩔수 없이 돌아온 사람들도 이런 권위주의에 대한 분노가 아직도 남아있다. 나는 무지의 상태로 그저 권위주의에 고개 숙이고 살았지만 교회가 하는 말도 반드시 분별해서 들어야 함을 깨닫고보니 참 가슴아픈 일들이 너무 많았음을 깨달았다.
따라서 교회의 권위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내가 많이 알아야 한다. 반드시 다니는 교회와 결이 다른 교회에 가서도 말씀을 들으며 스스로 분별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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