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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요한계시록

두아디라 교회에 보내는 편지 | 우리의 거룩함에 대한 점검

- 소개의 말

  [ 그 눈이 불꽃과 같고, 그 발이 놋쇠와 같으신 분 ]

  • 눈이 불꽃과 같다는 말 :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눈.
  • 발이 놋쇠와 같다는 말 : 어떤 경우에도 허물어 지지 않는 분

 

- 두아디라 교회에 대한 칭찬

  [ 나는 네 행위와 네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오래 참음을 알고, 또 네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을 안다. ]

  • 나중 행위 : 헬라어로 에르곤ἔργον 으로서 그냥 일하는 것이 아니라 피땀흘려 일 함을 의미한다. 두아디라 교인들은 피땀흘려 무엇을 위해 일했을까. 그것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편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 바울 사도가 말하는 에르곤 : (살전 1: 3) 또 우리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여러분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둔 소망을 굳게 지키는 인내를 언제나 기억하고 있습니다. 
    • 사랑의 수고(kovpo) : 자기 외부의 누군가가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내 마음이 너무 아파서 가슴을 치듯. 그래서 그의 문제를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 두아디라 교인들은 그동안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측은한 마음을 갖고 그 문제를 위해 노력해왔음을 알 수 있다.

- 이사벨 이야기

 당시 아스다롯의 제사장이었던 아버지의 교육을 받고 자랐던 이사벨은 아스다롯 신앙에 투철한 사람이었다. (아스다롯은 페니키아를 의미한다.) 아스다롯의 신앙은 풍요와 관련돼있었는데윤리적 삶을 바라는 성서종교와는 반대로 윤리와 가깝지 않았다. 그리고 풍요는 언제나 땅과 과 짐승들이 새끼를 낳는 것과 관려돼어 성적 방종으로 이어졌다. 이사벨은 남편인 아합을 설득해서 사마리아에 신전과 제단을 짓기도 했다. 그리고 사제들 850명을 후원하기도 했다. 이를 비판하던 야훼 하나님의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했다.

 

- 두아디라 교회의 이사벨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세상을 떠나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으니 그들과 어울려야 한다. 그러니 그들이 하는 종교의식에 동참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라고 말했음을 알 수 있다. 이세벨의 생각속에는 어느 것이 옳으냐 보다는 어느것이 이익이 되느냐가 우선시 됐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잘못된 길로 인도할때 '내가 하나님으로 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말을 내세웠다.

 우리도 흔히 이런 생각을 갖는 경우가 종종있다. 그러나 그 말은 무의식속에서 들려온 욕망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여기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기도하다 보면 어떤 음성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비전이 보이는 것 같을때 세상에 나가서 말하지 말고 무시해야 한다. 그러나 계속 그 말이 들린다면 자신을 지도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찾아가 물어봐야 한다. 따라서 사람들이 미혹되는 말은 그곳에서 온다.

  •  16세기 십자가의 성요한이라는 분이 들려주는 이야기 : 수도사들이 비전이 보인다거나 음성이 들린다면 무시하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계속 반복된다면 장상에게 말씀을 드리라고 조언한다. 이때 영적 경험이 많은 사람에게 찾아갈지, 지식이 많은 사람에게 찾아갈지 결정을 해야하는데 이때 지식이 많은 사람에게 찾아갈 것을 부탁한다. 그 이유는 분별력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세벨은 자신이 신적 영감을 얻었다면서 사람들을 오인하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과 함께 살아야 하니, 그들과 적당히 타협할 줄 알아야 해. 마음을 거기에 바치는 건가. 몸만 거기에 걸치는 거지.' 그들은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차이를 혼돈속에 넣는다. 근데 이세벨의 이야기에 사람들이 넘어가는 이유는 그들의 말이 마음에 더 와 닿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유혹에 빠지는 이유는 자기 마음에 유혹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넘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을 경계하라고 말씀하신다.

 

- 하나님의 경고

 <이세벨은 교회를 박해하지 않는다. 설교에 귀 기울입니다. 그러나 어느순간 여선지자로서 자처하고 자신의 지혜가 일의 세계가 표준이라고 선언합니다. 그가 상황을 접수합니다.> - 요한계시록 설교(유진피터슨)

 이 문제는 어느 교회를 가든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은 이에 약속을 하신다. 물들지 않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짐을 지우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애써 해왔던 일을 계속 하라고 말씀하신다.

 

- 하나님의 약속

  [ 민족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겠다..... 샛별을 주겠다.]

  샛별은 새벽의 신호이다. 요한계시록 22장에서 나는 다윗의 뿌리요, 그의 자손이요, 빛나는 샛별이다 ] 라고 말씀 하신다. 긴 밤에 지친 사람들에게 아침이 왔음을 알려주는 존재. 하나님을 잊은 세상에서 하나님을 상기시키는 사람이 샛별이 되는 사람이다.

 

세상에 적당히 동화된채 살아가면서 전혀 세상과 구별되지 않는 삶을 살면서 스스로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이세벨을 용납하는 행위이다.

 

- 기도

자비로운 하나님. 두아디라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에 경청하면서 우리또한 이세벨의 교훈에 맥없이 넘어간 것이 아닌가 돌이켜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 세상에서 생계를 유지하며 살기 위해서,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타협을 하며 살았는지 모릅니다.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사야하는 것은 마땅한 것이지만은 그러나 우리가 믿음의 근본을 뒤흔드는 일만큼은 절대로 따라가지 않아야 함에 불구하고 우리는 근본조차 내던지고 세상에 마음을 팔아 버릴때가 많았습니다. 교회조차 세상의 논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가 반성해봅니다. 주님 이땅에 모든 교회들이 이세벨을 용납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끝까지 믿음의 행위를 거듭함을 통하여서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이땅위에 드러내는 멋진 교회들이 되게 도와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