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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안식 - 아브라함 헤셸

영원은 한날을 낸다.

 
안식(양장본 Hardcover)
유대 하시디즘에 대한 20세기 최고의 사상가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의 대표작 『안식』. 현대인이 잃어버린 안식의 참된 의미를 말한다. 아울러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모든 가치를 무시하는 현대 문명을 비판하고 있다. 안식일은 생존을 위해 벌이는 개인적이며 사회적인 갈등을 멈추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등이 평화를 이루며, 영혼을 되살아나게 하고, 돈으로부터 독립하는 날이다. 또한 자신을 되돌아보는 날이기도 하다. 이 책은 하나님을 특정한 장소에 가두어 버리고, 안식일을 일상생활을 방해하는 날로 생각하는 현대인에게 안식일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성서의 인간관을 구현하고자 하는 저자의 신념을 담고 있다. 양장본.
저자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
출판
복있는사람
출판일
2007.01.26

 

기술문명과 안식

  기술 문명은 인간이 공간을 정복하여 이루어 낸 것이다. 그러나 공간ㄴ을 지배하고 공간의 사물을 획득하는 것이 유일한 관심사가 될때 삶은 망가진다.

  본래 인간의 욕심을 위해 탄생한 기술 문명은 장소를 지배하다보니 신이 공간속에 있다는 생각을 받는다. 즉, '신이 어디있나' 물었을 때 이미 자신들의 문명속에서 하나님을 찾는 셈이다.

  그러나 인간은 시간과 대면했을 때 죽음이라는 문제를 회피할 수 없게 된다. 이 문제에 당도한 인간은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는데 공간이 주는 기쁨, 소유의 기쁨은 어쩌면 행복의 위조품이되는 셈이다.

최초의 거룩함. 안식일

  성서에서 최초로 거룩한 이란 형용사가 붙어지는 단어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안식일이었다. 그리고 역사가 된 후 하나님은 인간속에 거룩함을 요구하셨다. "너희는 내게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성막을 짓도록 명하셨다.

  그렇다면 안식일을 어떻게 거룩하게 보낼 것인가. 안식일은 시간을 경축하는 데 있다. 안식일은 우리가 시간속에 있는 영원한 것을 공유하고 창조의 결과물에서 창조의 신비로, 창조의 세계에서 창조로 나아가라고 요구 받는다.

  안식일은 시간속에 궁전과 같다. 그것은 하나의 날짜가 아니라 하난의 분위기다. 그 분위기는 하나님과 친해지고 닮아가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안식일은 육체의 날이기도 하다. 위로와 기쁨이야 말로 안식일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이다.

  또한 안식일은 만물에게 누구를 찬양해야 하는지 가르친다.

안식일은 문명을 넘어서게 한다.

  기술문명에게 우리는 이익을 얻기위해 힘을 기울인다. 하나님은 아담으로 하여 에덴동산을 아름답게 꾸미고 돌보게 하셨다. 따라서 엿새 동안 일 할 의무도 하나님이 인간과 맺은 언약의 일부이기 때문에 기술 문명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하나님은 여섯째 날까지 일하셨다. 그리고 일곱째날 안식을 가지셨다.

  따라서 안식일은 기술 문명에서 독립하여 사는 것이다. 이 독립이란 생존을 위해 벌이는 싸움을 멈추고 조화롭게 사는 것이다. 

안식일은 우리를 구원으로 이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 덧없이 삶을 살아내는 기독교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몇몇은 그들 보면서 한탄하고 마음이 괴로울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을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은 안식일에 대한 헌신이다. 즉, 공간과 사물과 함께 살되 영원을 사랑하면서 사는 것은 우리를 구원으로 이끈다.

  안식일과 영원은 하나이다. 이것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사사이다. 전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토라를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가 토라를 받아들이고 나의 계명을 지키면, 내가 지닌 가장 값진 것을 영원토록 너희에게 주겠다.'
  그러자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물었다. '우리가 당신의 토라를 준수하면, 당신께서 주시기로 한 값진 것이 무엇입니까?'
  '내세가 그것이다.'
  '내세의 한 예를 보여주십이오.'
  '내세의 예는 안식일이다.'

  우리의 삶은 일곱째 날을 향한 순례 여정이다. 한 주 내내 안식일을 동경하는 것이야말로 한평생 영원한 안식을 동경하는 하나의 형식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앞에서 사랑을 고백하는것, 그리고 열정을 쏟아붓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것. 그러므로 하나님과 관계되어 지게 될때,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게 된다. 하나님을 닮아가고자 하게 된다. 이런 창조적이 마음이 한대 모여지는 것. 즉, 영원이 한 날을 낸다.(Eternity utters a day)


  아브라함 허셸의 말은 간결하고 명확했다. 또한 그의 딸이 작가가 안식일을 보내는 모습을 묘사하기도 했는데 정말 안식을 얻은 것 처럼 평안하게 시간을 보낸다고 느꼈다.

  그렇다면 내게도 안식이 있었는가. 봉사로 하루를 시작하면 금방 지치고 부서 사람들과 먹고 떠들다 예배 드렸다. 요즘은 하루가 널널하지만 그래도 마음에 안식이 없었던것 같다. 뭔가 열심이었다고 느껴진다.

  뭐랄까. 요즘들어 공허감이랄까. 기대감이 없다랄까. 하나님의 현존이 안식일날에 내려진다는데 나는 주저하고 있다. 나는 어쩌면 목사, 그리고 성도들을 바라본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나에게 해줄 것만을 기대한 것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주님의 현존에 기뻐하지 못했던것 일까.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셨던 예수님. 그분이 구원자이신 이유는 어쩔 수 없이 안식날 일을 해야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셨기 때문이다. 아마 예수님도 엄격하게 그날을 지켜야한다고 하셨다면 안식날 일은 마치 술을 먹지 말라는 것처럼 율법이 됐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유대교의 안식일을 따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홍장춘 목사의 설교에서 이렇게 말한다.

안식일 논쟁에 대한 예수님의 결론입니다.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 2:28)
구약의 안식일을 지키려는 율법의 굴레에서 벗어나 생명을 살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의 목적을 기억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주일이 되어야 합니다. 방탕과 교만에 머무는 안식일이 아니라 회개와 용서, 사랑과 평화, 증거와 나눔이 있는 천국의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하나님 백성들의 삶이 주일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허셸이 강조하는 안식과 비슷하다. 하지만 다른점 하나.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의 목적을 기억해야 하는것.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에 잇대서 살고자 다짐하고 실천해야 하는것.

목사님의 설교를 읽자 내 마음 속에 억눌렸던 짐이 풀려남을 느꼈다. 왜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지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