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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공리주의<2> - 책장을 다 넘겼지만 해석을 요약하는 글

책을 열심히 읽었지만  어려웠고 알고봤더니 밀의 공리주의는 과거 유명한 학술지에 게재한 글을 종합한 것이다. 그래서 그 시대적 배경과 벤담의 공리주의, 그리고 그당시 받았던 공리주의 비판등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 뒤에 옮긴이의 해석을 정리한다.

공리주의의 출발점 그리고 벤담

공리주의는 David Hume(흄이라고 불린다.)을 거쳐 벤담에 의해 체계를 갖추었다. 벤담은 공리주의를 통해 당시 팽배했던 직관주의적 도덕관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도덕적 직관주의는 선이나 도덕적 규범은 추론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직관에 따라 도덕성을 정하는 것이다. 그러니 반발심도 만만치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벤담은 - 사람은 고통과 쾌락이라는 군주와도 같은 힘의 지배를 받으며 이에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 - 라고 정리했다. 사람들이 각자 자유로 쾌락을 증진하고 고통을 감소시킬수 있다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가장 많은 비판을 받은 이유는 쾌락과 고통의 크기를 계량화 해서 비교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가치의 객관적 기준을 정하지 않았지만 쾌락과 고통을 계량화했다는 점에서 그도 또한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기 위해서 무리한 시도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는 그런 비판에도 자기가 만든 공리주의가 좋은 법률과 나쁜 법률을 구분하는데 기준을 만들고자 했기 때문에 개의치 않아했다. 벤담은 각종 개혁정책인 공무원 제도와 비밀투표, 의회에서 평등 대표제 및 교육 기회 확대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벤담과 밀

존 스튜어트 밀은 이미 벤담과 아는 사이였다. 밀의 아버지 제임스 밀은 벤담과 더불어 공리주의 철학의 기초를 세웠다. 그 둘은 각별했으며 아들 밀이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음을 알아보고 큰 관심을 보였다. 아버지는 그에게 어려서 부터 공리주의 철학을 주입했고 그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자기 또래의 젊은이들을 모아서 독서토론회를 조직한 뒤 공리주의자협회 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밀은 사춘기에 빠지면서 벤담의 공리주의에 등을 돌리게 되는데 스스로 정해놓은 목표(세계의 개혁)이 모두 달성되었을 때, 과연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자문해보니 아니라는 답이 나왔다. 아마 그가 정한 목표도 공리주의를 전세계에 퍼트리는 사도가 되는것이 아니었을지 생각된다.

흔히 벤담주의자를 '한갓 이치만 따지는 기계'라고 불렸는데 밀은 그렇게 교육받아 온것이다. 그런 교육은 이성적 사고에는 도움이 되지만 감정문제를 등한시하게 되는데 이는 공리주의가 추구하는 쾌락과 기쁨이 설자리가 없어지고 만것이다.

이떄 워즈워스의 시가 큰 힘이 되었다. 사색과 분석 못지않게 수동적인 감수성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었다. 밀은 이때부터 음악, 시, 미술 등이 인간의 교양을 넓히는 데 필수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최대 행복의 원리

공리주의는 효용과 최대 행복 원리를 도덕의 기초로 삼는 이론이다. 밀은 행복을 제외하면 사람이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은 없다는 확신 아래,  고통으로부터의 자유와 쾌락이야말로 목적으로서 바람직한 유일한 것이 된다. 이는 공리주의의 핵심 명제가 된다.

밀이 일반적인 공리주의자들과 다른 점은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고귀하게 여겼다. 공리주의자들은 희생 그 자체가 선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행복의 전체 양을 증진하지 않는 희생이라고 여겼다.

차라리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더 낫다.

벤담의 전통적 공리주의 가치관, 즉 물질 우선적, 개인 중심적 사고방식에 밀은 반기를 들었다. 벤담은 푸슈킨(러시아 시인의 이름)과 푸시핀(압정)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 반면 밀은 시 한편이 호떡 한개보다 더 소중하다고 믿는다. 애초에 사람과 물건을 같은 반열에 올릴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가치를 염두해 두는가? 그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가치기준으로 자존심, 자유, 개인적 독립성의 가치, 권력이나 흥겨운 것에 대한 요구, 자신에 대한 존경심 등을 제시한다. 교양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삶 주변에서 흥미로운 일을 무궁무진하게 찾아낸다. 그러나 지적 호기심을 잃고 나면 보다 높은 것에 빠져들 시간이나 기회가 없어지고 그에 따라 그런 것을 추구하는 열망도 사그라진다. 그 대신 열등한 쾌락 속으로 자신을 몰아넣는다.

밀은 이런 논의 끝에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렇기 때문에 만족해하는 돼지보다 불만족스러워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 더 낫다고 하는 것이다.

밀의 공리주의 도덕에서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바로 다른 사람에 대한 비려의 중요성이다. 꽤 괜찮은 사람인데도 왜 자신의 삶을 충분히 즐기지 못하는가? 그것은 그 사람이 자기만 알고 다른 사람들을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기심이야 말로 우리 삶을 불만족스럽게 만드는 첫 번째 원인이다.

밀은 왜 사람들이 도시를 만들고 땅을 경작하는 지에 대해서 눈여겨 보았고 그런 능력들은 우리의 본성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나온 것이라고 보았다. 밀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사회적 감정이 자연적 감정의 기초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에 의하면 사회적 감정이란 주면의 다른 사람들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열망인데 이는 가르치지 않아도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결국 밀이 생각하는 공리주의는 벤담의 공리주의와 차원이 다르다.

밀의 공리주의에 대한 나의 평가

밀의 객관적 도덕성을 평가하는 방법에 대해서 합리적인 토론과 만장일치가 불가능 할 시 다수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쉬운 말을 그동안 벤담의 공리주의와 대립해서 의견을 내느라 그 어렵고 복잡한 말을 썼어야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당시 공리주의가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이 든다.

결국 그가 하고 싶은 말은 제발 자신만의 쾌락을 위해서, 행복을 위해서 살려고 하지 말고 서로 희생하고 높은 차원의 기쁨을 가져가도록 노력하면 그것이 모두의 기쁨이 되고 말 그대로 사회전반적으로 공리주의가 실천된다고 본것같다. 그러면서 사람에 대한 높은 고찰등이 이미 많이 발전했다는 점에서 놀랐다. 나중에서야 심리학이 발전했지만 그런 학문이 없는 시대에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점이 놀라웠다.

결국 밀이 하고 싶은 말은 제발 사람답게 살라는 것이다. 시기하고 질투하고, 말로서 특정인을 호리고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게 하는 행동들, 돈좀 더 벌어보겠다고 사람을 물건처럼 쓰는 것, 공평하지 않고 편파적인것, 세대와 세대의 갈등. 요즘은 너무 서로의 입장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내 입장만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이웃을 내몸과 같이 아끼지 않으면 안되는 지 등에 대한 밀의 성찰은 현대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진다고 생각된다.